Dream of 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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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파이이야기

꿈꾸는깽이 2014. 2. 1.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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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저자
얀 마텔 지음
출판사
작가정신 | 2013-11-1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One boy, One boat, One tiger…….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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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임시저장해둔 뒤 일년만에 올리는 리뷰.
 예전에 학교에 다닐때 수업중에 동물원에 관한 작업을 한 적이 있다. 동물원은 동물들의 낙원이기도 하자 감옥이기도 하다. 그들이 가장 안전하고 평안하게 누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며, 그들이 갇혀있고 제제당하며 구경당하는 모순적인 공간이기도하다. 이 공간을 만든것도 인간의 행위이지만, 이들을 구경하는 것도 인간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꼭 불행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가 보고있는건 동물들 그 자체가 아닌, 동물들이 갇혀있는 울타리-철장-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한 생각에서 출발했던 작업이 있었다. 더이상 발전시키진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반가웠던 부분은 바로 이러한 시각에 대한 공감이었다. 다양한 종교적 관점과 해석, 비유등 읽을 거리(&생각할거리)가 많은 책이었지만, 적어도 나에겐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파이이야기中

 신과 종교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처럼, 사람들은 동물원에 대해서도 헛소리를 많이 한다. 그릇된 정보를 얻은 순진한 이들은 동물이 야생이라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기'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머릿속에 사자나 치타같이 몸집이 크고 잘생긴 육식동물을 떠올린다(영양이나 땅돼지의 삶은 보잘것없다.). 사람들은 경건하게 운명을 받아들인 먹잇감을 포식한 후, 소화도 시킬 겸 푸른 초원을 거니는 야생동물을 상상한다. 또는 축 늘어져 있다가 살을 빼려고 뛰어다닌다고 생각한다. 이 동물이 당당하면서도 자애롭게 자식을 보살피고, 가족이 나뭇가지에 몸을 걸친 채 행복한 한숨을 지으며 지는 해를 바라보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한다. 야생동물의 삶이 소박하고 품위 있으며 의미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악한 인간들에게 사로잡혀 좁은 감옥에 갇히면 동물의 '행복'은 끝나버리고, 동물들은 '자유'를 빼앗긴 동물은 그림자처럼 되어 영혼이 꺾여버린다고·····. 그런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야생동물들은 가차 없는 서열체계의 지배를 받는다. 언제나 공포를 느끼고, 먹잇감은 부족하고, 영역을 사수해야 하고, 기생충을 참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유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야생동물들은 공간도 시간도 자유롭지 못하고, 관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론적으로는-즉 단순한 물리적인 가능성 면에서-동물은 인습과 자기 종족에게 지워진 경계를 무시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예컨대 평범한 관계-가족,친구,사회-속에 살던 상점 주인이, 주머니에 든 잔돈푼만 갖고 모든 걸 버리고 입은 그대로 자기 인생에서 걸어 나간다고 가정해보자. 굉장히 대담하고 지적인 사람이라도 낯선 곳을 배회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인간보다 기질이 더 보수적인 동물이 그럴 수 있을까? 동물은 원래 그렇게 보수적이다. 심지어 '반동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동물은 아주 작은 변화에도 당황한다. 동물은 며칠이고 몇 달이고 똑같기를 바란다. 놀라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공간에 대해서도 그런 반응을 보인다. 동물원이든 야생이든 어느 곳에서나, 장기판 위의 말처럼 움직인다. 뱀장어나 곰이나 사슴은 장기판에서 말의 위치처럼 움직인다. 뱀장어나 곰이나 사슴은 장기판에서 말의 취치처럼 특별할 것도 '자유로울'것도 없다. 동물이나 장기판이나 정해진 대로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 야생동물은 그런 이유때문에 계절이 바뀌어도 언제나 같은 길을 다닌다. 동물원에서는 어떤 동물이 평소 자리에 평소 그맘때, 평소 자세로 있지 않으면, 무언가 일이 생긴 것이다. 사소한 환경 변화만 있어도 반응을 보인다. 사육사가 두고 간 둘둘 말린 호스가 위협하는 듯하다. 땅이 파여 물만 고여도 신경쓴다. 사다리가 그림자를 드리워도, 동물에게는 그런 것이 큰 의미가 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동물원 관리인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증후랄까, 문제가 생길 거라는 예고가 된다. 변을 검사해야하고, 조련사와 점검해야 하며, 수의사를 불러야 한다. 황새 한 마리가 평소 자리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이 모든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잠시 문제를 한 가지 면에서 바라보자.
우리가 어느 집에 가서 현관문을 발로 차고, 그 집 사람들을 거리로 내쫓으면서 "가요! 당신들은 자유입니다! 새처럼 자유롭다구요! 가세요! 어서요!"라고 한다면, 그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기뻐서 춤출까? 아닐 것이다. 새들은 자유롭지 않다. 쫓겨난 사람들은 더듬더듬 "무슨 권리로 당신이 우릴 쫓아내? 이건 우리집이야. 우리가 주인이라구. 여기서 오랫동안 살았어. 경찰을 부르겠다. 이 나쁜 놈아!"라고 말하겠지.
 '집만 한 곳은 없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동물도 똑같다. 동물 세계에는 텃세가 있다. 그게 동물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열쇠다. 익숙한 영역에서만 야생생활의 혹독한 의무 두 가지를 완수할 수 있다. 적을 피하는 일과 먹고 마실 것을 얻는 일! 생물학적으로 균형이 잡힌 동물원 구내도-새장이든, 우리든, 작은 섬이든, 테라륨이든, 사육장이든, 수조든-또다른 영역이다. 다만 크기가 별다르고 인간의 영역과 가깝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대자연에서 차지하는 영역보다 훨씬 작은 데도 이유가 있다. 야생의 영역은 취향 때문이 아니라 필요 때문에 넓다. 동물원은 집이 사람에게 해주는 일을 동물들에게 해준다. 야생의 영역에서는 뚝뚝 떨어져 있지만, 동물원에서는 우리라는 좁은 공간에 모여 있다. 우리에 들어오기 전에는 동굴이 여기 있고, 강이 저기 있고, 한참 떨어진 곳에 사냥터가 있고, 그 옆에 언덕이 있고, 산딸기는 저 멀리 있었다- 언제나 사자, 뱀, 개미, 거머리, 덩굴 옻나무에 시달려야 했지만, 이제 손이 닿는 곳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강이 흐르고, 잠자리 바로 옆에서 몸을 씻고, 요리한 곳에서 식사하며, 집에 담장을 쌓을 수 있고, 깨끗하고 따뜻하게 보존할 수 있다. 사람의 집은 기본 욕구를 가까이서 안전하게 해결해주는 영역 안에 있다. 동물원은 동물에게 마찬가지 역할을 해준다(인간이 사는 집에 있는 벽난로 같은 것은 없지만). 그 안에 필요한 곳이 다 있다-쉴곳, 먹고 마실 곳, 목욕할 곳, 털을 가다듬을 곳 등등. 사냥할 필요가 없고, 먹이가 일주일에 엿새 동안 생기는 것을 알면, 동물은 동물원 안에 자리를 마련한다. 자연에서처럼 새 영역을 차지하고 탐색하며, 소변을 뿌려서 영역을 표시한다. 일단 이주의식을 치르고 자리를 잡으면, 초조한 세입자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는다. 갇혔다는 느낌은 더더욱 없다. 오히려 주인이 된 기분을 느끼며, 동물원 안에서도 야생 그대로 행동한다. 침범 받으면 사력을 다해 영역을 지킨다. 그렇게 동물원에 가두는 것이 야생으로 사는 것보다 객관적으로 더 나을것도 나쁠 것도 없다. 동물의 욕구만 충족된다면, 대자연이든 인공 환경이든 영역은 기정사실이 되어버린다. 표범의 점박이 무늬처럼, 가치판단을 할 필요가 없다. 동물이 지성이 있어 선택할 수 있다면, 동물원의 삶을 선택할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동물원과 야생의 차이는 동물원에는 기생충과 적이 없고 먹이가 풍부한데, 야생의 서식지에는 기생충과 적이 많고 먹이가 드물다는 것이라나. 생각할 나름이다.'리츠'같은 고급 호텔에서 무료로 룸서비스를 해주고 무제한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쪽을 택하겠는가? 하지만 동물에겐 그런 분별력이 없다. 본성의 범위 안에서 갖고 있는 것으로 살 뿐.
 훌륭한 동물원은 공들여 우연을 조성한 곳이다. 동물은 소변이나 다른 분비액으로 '접근하지 마!'라고 하며, 우리는 동물에게 울타리로 '안에 있어!'라고 한다. 그렇게 평화가 이루어지면 모든 동물이 만족하고, 동물과 인간은 긴장을 풀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동물들이 달아날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거나, 달아났다가도 돌아오는 이야기를 문학작품 속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침팬지 우리의 문이 잠기지 않아 열린 적이 있었다. 침팬지는 점점 초조해하며 비명을 지르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으므로-매번 귀가 멍멍할 정도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조련사가 관람객에게 연락을 받고 달려간 일이 있다. 유럽의 어느 동물원에서는 노루 떼가 열린 우리 밖으로 나온 적이 있다. 관람객이 놀란 노루 떼는 동물원 옆의 숲으로 뛰어갔다. 숲에는 다른 노루들이 있어서 어울릴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동물원 노루 떼는 곧 우리로 돌아왔다. 또다른 동물원에서는 직원이 이른 시간에 나무판자를 들고 작업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새벽안개 속에서 곰이 나타났다. 곰은 자신 있게 그를 향해 걸어왔다. 직원은 나무판자를 내던지고 젖 먹던 힘까지 내서 달아났다. 곧 사육사들이 달아난 곰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곰은 자기 우리에 돌아가 있었다. 쓰러진 나무를 딛고 우리 밖으로 기어 나왔을 때와 똑같이 울타리를 기어 올라가 우리 안에 들어가 있었다. 땅에 나무판자가 떨어지는 소리에 몹시 겁을 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주장만 하진 않겠다. 동물원을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다. 모든 동물원을 폐쇄한다 해도 난 상관없다(황폐한 자연에서 야생동물이 살아남을 수 있기를 소망할 밖에). 이제는 동물원이 사람들에게 은총이 아니라는 걸 안다. 종교도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자유에 대한 어떤 환상이 그 둘을 오염시킨다.

 

 책은 벌써 읽은지 일년이나 돼서 자세히 리뷰를 못쓰겠다. 영화도 봤지만 역시 책이 주는 감정을 표현하는덴 역부족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냥 3d로 영상미만 열심히 보고왔던 것 같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내가 놓쳤던 많은 비유와 암시들이 나왔다. 다시한번 곱씹으며 읽긴 해야할 것 같다. 하지만 요즘 나는 너무 바빠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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